정보를 저장하는 것은 우리 마음의 아카이브 시스템 안에서 일어나는 복잡한 과정입니다. 단기 기억은 정보를 잠시 보관하는 임시 저장소의 역할을 합니다. 작업대 위의 문서처럼 바로 사용할 수 있도록 저장하는 공간입니다. 장기 기억으로의 전이는 거대한 도서관에 책을 집어 넣듯이 다양한 형태의 정보를 장기간 안정적으로 저장하는 깊은 해석과 연결 과정을 통해 이루어집니다. 장기 기억에 정보를 효과적으로 저장하기 위해서는 스토리텔링, 시각화, 연관 기억 등 창의적인 전략이 활용됩니다.
1. 장기기억
어릴 때 가족과 함께 소풍을 갔던 일이라든지 초등학교 때 애국가 가사를 배운 것 등등, 아주 오래 전의 일임에도 불구하고 아직도 기억하고 있는 것들이 많이 있을 것입니다. 시간경과에 따라 급속히 소멸되는 감각기억이나 단기기억과는 달리 장기기억이란 오랜 기간 동안 정보를 저장하는 무제한의 용량을 가진 기억입니다.
성수대교 붕괴, 대구 지하철 공사장 가스폭발사고, 삼풍백화점 붕괴 등을 생각해 보세요. 아마도 여러분은 이런 사건들이 일어났을 때 어디에 있었고 무엇을 하고 있었으며 어떤 느낌을 받았는지에 관해 지금도 정확하게 기억할 수 있을 것입니다.
이런 중요한 서건들에 대한 아주 생생하고 상세한 기억을 섬광기억이라고 하는데 이런 기억은 평생 동안 지속될 수도 있습니다.
장기기억이 오래 지속되는 기억이라고는 하지만 과연 그 기억이 영구적인 것일까요? 섬광기억이 상당히 오래 지속되는 것임에도 불구하고 여러 연구들은 이런 기억이 아주 정확하거나 특별한 것은 아니라는 점을 지적하고 있습니다. 다른 기억처럼 섬광기억도 시간이 지남에 따라 점차 기억내용의 상세함과 완전성이 떨어진다고 합니다.
(1) 장기기억으로의 정보전이
정보는 어떻게 단기기억에서 장기기억으로 전이되는 것일까요?
Atkinson과 Shiffrin에 따르면 단기기억에 있던 정보가 시연을 통해 점차 장기기억으로 전이된다고 합니다.
Rundus가 그들의 가설을 연구하였는데 피험자들에게 20개의 단어로 된 목록을 시연하고 나서 그 목록을 회상하도록 하였습니다. 단어들을 한 번에 된 목록을 시연하고 나서 그 목록을 회상하도록 하였습니다. 단어들을 한 번에 하나씩 천천히 제시함으로써 피험자들이 회상 단어를 듣기 전에 이미 들은 단어를 시연할 시간을 가질 수 있도록 하였습니다.
그 결과 회상 수준이 단어목록의 처음과 끝에 제시된 단어에서 제일 높게 나타났습니다.
이런 현상을 서열위치 효과라고 하는데 U자 형태의 곡선으로 나타나 있습니다.
이 서열위치 효과는 목록의 첫 부분에 있는 항목들을 더 잘 회상하는 초두성 효과와 목록 끝부분의 항목들을 더 잘 회상하는 신근성 효과라는 두 가지 효과가 특히 두드러집니다. 많은 이론가들은 이 효과를 단기기억과 장기기억이 별도로 작용하기 때문이라고 설명합니다. 목록 첫 부분의 단어들은 다른 단어들보다 더 자주 시연되었고, 따라서 장기기억으로 더 많이 전이되었기 때문에 초두성 효과가 나타나며, 이 효과는 단어들이 장기기억에 저장되었음을 반영하는 것입니다. 반대로 신근성 효과는 단기기억을 반영하는 것입니다.
목록의 끝부분에 나온 단어는 가장 나중에 제시된 것이기 때문에 단기기억에서 바로 기억해 낼 수 있습니다.
시연을 통해서 정보가 장기기억으로 전이되는 것은 분명한 것 같지만 시연의 유형이 한 가지만 있는 것은 아닙니다. 단순히 새로운 정보를 계속 반복해서 외우는 것을 유지형 시연이라 하고 새로운 정보의 의미에 초점을 맞추어 처리하는 시연을 정교형 시연이라고 합니다. 정보는 유지형 시연보다는 정교형 시연을 통해서 장기기억으로 더 잘 전이되는 것으로 보입니다.
(2) 조직화
여러분이 심리학 리포트를 쓰기 위해 참고도서를 찾으러 도서관에 갔다고 생각해 보세요. 만약 수만 권의 책이 도서관에 보관되어 있기는 하지만 제대로 정리가 되어 있지 않아서 서가에 뒤죽박죽으로 꽂혀 있다면 여러분은 참고도서를 찾느라고 리포트 제출시기를 놓쳐버리고 말 것입니다. 이와 마찬가지로 무엇인가를 오래 기억하려면 조직화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우리가 장기기억이라고 부르는 기억 속에는 엄청나게 많은 양의 정보가 들어있지만 정보가 조직화되어 있지 않다면 그 방대한 정보는 사실상 무용지물일 것입니다. 불행하게도 인간의 장기기억이 그렇게 체계적으로 잘 조직화되어 있는 것 같지는 않습니다. 많은 연구들을 살펴보면 장기기억은 서로 중복되는 여러 가지 조직화 구조들로 뒤범벅되어 있는 모습을 하고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군집화와 개념적 위계
우리는 유사하거나 관련이 있는 항목들을 무리 지어 기억하는 경향이 있는데 이런 현상을 유목별 군집화라고 부릅니다.
군집화는 서로 관련이 없는 항목들이라서 범주로 나누어 볼 수 없는 경우에도 일어납니다.
Tulving은 피험자들에게 서로 관련도 없고 유사한 유목에 속하지도 않는 단어목록을 제시하고 어떤 순서로든 그 단어들을 회상하게 했습니다. 그 결과 피험자들이 단어들을 자신에게 개인적인 의미를 가지는 특이한 유목으로 군집회를 하는 것을 발견했습니다. 이런 현상을 주관적 조직화라고 합니다.
Bower, Clark, Lesgold 및 Winzenz는 정보를 개념적인 위계에 따라 조직화하면 회상이 극적으로 향상됨을 발견했습니다. 개념적 위계란 정보항목들 간의 공통적인 속성에 기초한 중다 수준의 분류체계를 말합니다.
의미적 그물
모든 정보가 개념적 위계에 딱 들어맞게 조직화되는 것이 아니라 의미적 그물이라고 부르는 기억망에 따라 조직화되는 것으로 보기도 합니다. 의미적 그물이란 개념을 나타내는 마디들이 서로 관련 있는 개념들을 연결하는 경로를 따라 상호 결합하고 있는 것을 말합니다.
즉 경로의 길이는 개념 간의 의미적 길이를 나타냅니다. Collins와 Loftus는 사람들이 어떤 단어에 대해 생각할 때 자연스럽게 그 단어와 관련이 있는 단어로 생각이 옮겨간다고 합니다. 그들은 이런 과정을 의미적 그물 내에서 일어나는 활성화 확산이라고 부릅니다. 그들의 가정은 활성화가 그 단어를 둘러싸고 있는 의미적 그물의 경로를 따라 확산되고 그 활성화의 강도는 그물의 바깥쪽으로 뻗어갈수록 감소한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빨강이라는 단어를 보면 그 단어와 멀리 연결되어 있는 일출이라는 단어보다는 가까이 연결되어 있는 주황이라는 단어가 기억나기 쉽다고 합니다.
이 의미적 그물이라는 개념이 단어들 간의 연합을 분석하는 데는 유용하지만 정보들이 조리가 있는 전체적 지식으로 조직화되는 양상을 설명하기에는 부족합니다.
도식과 각본
도식이란 특정한 대상이나 서건들의 순서에 대한 조직화된 지식체계를 말합니다. 기억에 저장되는 정보는 실제로 관찰한 것뿐만 아니라 관찰한 내용에 대한 자신의 도식에 따라 달라질 수 있습니다.
Brewer와 Treyens는 방에 잠시 들렀던 30명의 피험자들에게 그 방에 대해서 기억할 수 있는 것을 쓰라고 하였습니다. 피험자들은 그 방이 교수연구실이라는 말을 들었습니다. 대부분의 피험자들이 책상과 의자 등이 있었다고 하였으나 9명의 피험자들은 실제로는 없었던 책이 있었다고 잘못 회상하였습니다. 이것은 자신이 가지고 있는 교수연구실이라는 도식과 일치되는 항목을 기억하려는 경향성 때문에 오류를 범한 것입니다.
각본이란 도신의 한 종류로서 사람들이 일상적인 활동에 대해 알고 있는 조직화된 지식을 말합니다.
Schank와 Abelson의 연구에 의하면, 레스토랑 각본은 레스토랑에 들어가기, 음식을 주문하기, 먹기, 떠나기라는 네 가지의 주요한 구성요소로 이루어지며 그 구성요소는 하위구성요소로 다시 나누어질 수 있습니다. Bower, Black 및 Turner는 사람들이 공통된 레스토랑 각본을 가지고 있는지를 검증하였습니다. 거의 모든 피험자들이 '메뉴판을 본다', '음식을 주문한다', '돈을 지불한다'와 같은 행위를 레스토랑에서 식사할 때 일어나는 행위로 언급하였습니다. 뿐만 아니라 피험자들은 레스토랑에서 식사하는 것을 아주 유사한 하위구성요소로 분할한다는 것을 발견했습니다. 이는 사람들이 레스토랑에서 식사하는 것에 대해 아주 유사한 도식을 가지고 있음을 시사하는 것입니다. 도식과 각본은 우리가 새로운 사건을 경험하고 기억할 때 기존의 조직화된 지식이 영향을 미친다는 점을 보여줍니다.
정보의 저장이라는 이번 글을 통해 여러분의 마음에 작은 변화의 씨앗이 심어졌기를 바랍니다. 심리학적 지식을 일상에 적용하여, 보다 풍요로운 삶을 만들어 가는 여정에 함께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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