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보 인출은 장기 기억에서 저장된 정보를 회상하는 과정입니다. 이는 특정 단서나 연관성에 의해 활성화되며, 인출에 성공하면 과거의 경험이나 지식 또는 기술을 현재 상황에 적용할 수 있습니다. 인출 과정은 단순하고 자연스러운 경우도 있지만 인출 단서의 부족이나 정보의 간섭으로 인해 어려울 수 있어 기억의 접근성과 정확성에 영향을 미칩니다.
1. 인출단서
우리는 누구나 한 번쯤은 어떤 사람의 이름이나 단어 등을 알고 있고 금방 기억이 날 것 같은데도 혀끝에서만 맴돌고 끝내 말을 하지 못하는 경험을 한 적이 있을 것입니다. 이런 현상을 설단형상이라고 합니다. TV에서 방영되는 퀴즈 프로그램에서도 이런 경우를 종종 볼 수 있습니다. 퀴즈 프로그램에 나온 출연자들에게 문제를 내면 정답을 맞히지 못하고 한동안 망설이는데 사회자가 어떤 힌트를 주면 금방 답이 기억난 듯 버튼을 눌러서 답을 말합니다. 힌트라는 것은 결국 기억 속에 있는 특정한 정보에 접근하는 것을 도와주는 자극, 즉 인출단서입니다. 이처럼 인출 실패상태에 있는 기억은 흔히 인출단서를 제시함으로써 되살아날 수 있습니다.
설단현상을 연구했던 Brown과 McNeil의 실험에서 피험자들에게 자주 사용되지 않는 단어의 정의를 말해주고 그 단어에 대해 첫 글자는 무엇인 것 같은지, 또는 몇 음절 단어인 것 같은지와 같은 질문을 했을 때 그 단어를 완전히 생각해 낼 수는 없더라도 그 단어의 첫 글자를 맞춘 사람이 57%, 단어의 음절수를 맞춘 사람은 63%나 되었습니다. 이는 피험자들이 그 목표단어를 인출하는 데 실패를 했더라도 그 단어를 알고 있었음을 시사하는 것입니다.
2. 맥락과 정서
여러분은 이틀 전 아침식사로 무엇을 먹었는지 기억할 수 있나요? 아마 금방 생각이 나지 않을 것입니다. 그러나 식탁에 앉아 있는 자신의 모습을 가만히 떠올려보면 생각이 날 것입니다.
이처럼 어떤 사건을 그 사건이 일어났던 맥락 속으로 돌아가서 생각해 봄으로써 기억의 인출을 돕는 것을 기억의 맥락단서라고 합니다. 졸업한 지 오래된 초등학교에 찾아가 보거나 오랫동안 떠나 있었던 고향 동네에 가보면 수많은 기억들이 떠오르는 것을 느낄 수 있습니다. 이처럼 그 정보를 기억했던 원래의 맥락으로 돌아가는 것은 그 정보를 기억 속에서 인출하는 것을 촉진합니다. 즐거운 기분, 혹은 슬픈 기분과 같은 강한 정서가 일으키는 인체 내부의 맥락도 기억인출에 영향을 미칩니다.
Bower는 피험자들에게 최면을 걸어 과거에 행복했거나, 슬펐던 사건을 회상하도록 하여 행복하거나 혹은 슬픈 기분이 들도록 하였습니다. 행복한 기분을 느끼는 상태에서 첫 번째 단어목록을 학습하고 슬픈 기분 상태에서 두 번째 목록을 학습한 다음, 행복 혹은 슬픈 기분 상태에서 첫 번째 목록을 회상하도록 했습니다.
그 결과 피험자들은 첫 번째 목록을 학습할 때의 기분과 동일한 기분상태일 때 단어목록의 회상 수준이 높았습니다. 이처럼 부호화할 때와 인출할 때의 정서상태가 동일할 때 더 잘 기억하는 것을 상태의존적 기억이라고 합니다.
이런 상태의존적 기억은 알코올이나 암페타민과 같은 약물이 투여되었을 때도 나타납니다. 최초 부호화를 할 때 술에 취해 있었던 사람은 나중에 인출을 할 때도 맑은 정신일 때보다 술에 취해 있을 때 회상량이 더 많다는 연구도 있습니다.
정서와 기억 간의 관계를 보여주는 다른 예도 있습니다. 사람들은 행복한 기분일 때 불쾌한 정보보다는 유쾌한 정보를 더 잘 기억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반대로 슬프거나 우울한 기분일 때는 즐거운 정보보다 불쾌한 정보를 잘 기억하는데 이런 형상을 정서일치효과라고 합니다.
3. 기억의 재구성
우리는 지금까지 살아오면서 수많은 글과 노랫말, 사진 등을 보고 들어왔지만 그 모든 것을 마치 비디오카메라로 녹화를 해두듯이 정확하고 선명하게 기억하지는 못합니다.
예를 들어 오래전에 읽었던 소설은 아무리 감명 깊게 읽었다고 하더라도 문장 하나하나의 정확한 표현을 기억하기보다는 오히려 그 의미나 주제를 기억합니다. 우리의 기억은 이처럼 들었거나 읽은 정보를 단순히 끄집어내는 것이 아니라 그 정보의 주제나 요점을 능동적으로 개구성하는 성질을 가지고 있습니다.
기억의 인출과정을 재구성적 과정으로 강조한 심리학자는 영국의 Frederic Bartlett경이었습니다.
그는 피험자들에게 [유령들의 전쟁]이라는 인디언의 전설을 두 번 읽게 하고 15분간 기다린 후, 읽은 이야기를 최대한 회상해서 써보라고 하였습니다. 그 결과 피험자들은 자신들이 읽은 이야기의 세부사항을 생략하거나 내용의 일부를 왜곡하거나 새로운 내용을 추가하였습니다. 피험자들은 읽은 이야기를 그대로 인출해 낸 것이 아니라 자신의 일반적인 지식과 문화적인 기대에 맞게 이야기를 재구성하였습니다.
Sulin과 Dooling도 기억이 어떻게 재구성되는가를 밝히려고 하였는데 그들의 연구에서 피험자들은 다음과 같은 문단을 읽었습니다.
<아돌프 히틀러는 자신의 정치적 야심을 충족하기 위해 현 정부의 기반을 흔들기 위해 노력했다. 그 나라의 많은 사람들이 그의 노력을 지지했다. 현재의 정치적 문제들이 히틀러가 정권을 인계받는 것을 상대적으로 쉽게 만들었습니다. 어떤 집단은 기존 정부에 충성을 하였고 히틀러를 곤란하게 만들었다. 그는 이 집단들과 맞서서 그들을 침묵시켰다. 그는 무자비하고, 통제 불가능한 독재자가 되었다. 그가 통치한 최종적 결과는 자기 나라의 파멸이었다>
피험자들은 이 문장을 읽고 나서 5분 후 혹은 1주일 후에 진위형 기억검사를 받았습니다.
5분 후에 검사를 받은 피험자들은 별로 틀리지 않았으나 1주일 후에 검사를 받은 피험자들은 재구성 오류를 많이 범했습니다. 즉 "그는 세계를 정복하려는 욕망에 사로잡혀 있었다"와 같이 문장내용에는 없지만 이미 가지고 있는 히틀러에 대한 일반적 정보를 이용해서 이야기를 재구성하였습니다.
기억이 재구성된다는 사실은 법률적인 문제에도 큰 함의를 가집니다.
Loftus라는 여류 심리학자는 기억의 재구성적인 왜곡이 목격자 증언에서 흔히 일어난다는 점을 지적했습니다.
Loftus와 Palmer는 피험자들에게 자동차 사고에 관한 비디오테이프를 보여주고 나서 마치 법정에서 증언을 하는 것처럼 엄격한 질문을 던졌습니다.
어떤 피험자들에게는 "두 차가 서로 부딪쳤을 때 차들이 얼마나 빨리 달리고 있었나?"라고 질문하고 다른 피험자들에게는 "두 차가 서로 충돌해서 박살이 났을 때 차들이 얼마나 빨리 달리고 있었나?"라고 질문했습니다.
'충돌해서 박살 났을 때'라는 질문을 받은 피험자들이 자동차의 속력이 더 빨랐다고 대답했습니다.
1주일 후 동일한 피험자들에게 사고현장에서 깨어진 유리조각을 보았느냐는 질문을 했습니다. 그 결과 충돌해서 박살이 났다는 질문을 받은 피험자들이 부딪쳤다는 질문을 받은 피험자들보다 깨어진 유리를 보았다는 대답을 더 많이 했습니다.
이처럼 목격자 증언은 질문 방법에 따라 달라질 수도 있습니다.
따라서 법정에서 행해지는 목격자 증언을 액면 그대로 믿어햐 하는지에 관한 의문을 제기해 볼 수 있습니다.
정보의 인출에 관한 포스팅을 마무리하며, 여러분의 소중한 시간에 감사드립니다. 더 좋은 내용으로 보답하기 위해 노력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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